티스토리 뷰

<구의 증명>은 추천받은 적이 있어서 읽어보려다가 죽은 연인을 먹는다는 기괴한 설정에 깜짝 놀라 그대로 덮었던 책이다. 사람을 먹는다는, 생각만 해도 충격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소설 순위에 올라와있었다. 이 책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지, 그리고 어떤 사랑을 했길래 죽은 연인을 먹어야만 했을지 의문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소설은 두 주인공 '구'와 '담' 시점으로 과거/현재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전개된다. 구의 시점은 ●으로, 담의 시점은 ○으로 표시되어 있다. 처음에는 두 주인공의 성별이 분간되지 않아 작가가 의도적으로 성별을 구분하지 않았나 싶었지만 읽다 보면 구는 남자, 담은 여자인 걸로 나온다. 책은 총 177페이지로 짧은 편이라 앉은자리에서 완독 했는데, 읽을수록 두 사람이 처한 상황과 사랑하는 과정이 애처로워 몰입해서 읽게 되었다. 

 


1. 최진영 작가 <구의 증명> 줄거리와 명대사

 

만약 네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구와 담은 여덟 살에 만난 동급생으로 초중고를 거쳐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하며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의 삶은 풍족하게 채워진 적 없었다. 구는 빚을 갚기 위해 또다시 빚을 지는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랐고, 담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비구니였던 난생처음 본 이모 손에 길러졌다. 그렇게 구와 담은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며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 

 

초등학교 시절, 구와 담은 밤낮없이 붙어 다녔다. 그러다 보니 철딱서니 없는 아이들이 구와 담에 관한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구는 노골적으로 음란한 말을 퍼붓는 아이와 싸우게 되고, 괜스레 자신 때문에 담이가 싸움에 휘말린 것은 아닌가 자책하면서 담이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그게 두 사람의 첫 번째 이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마음만은 언제나 서로를 향해 있었다. 하루종일 구는 담을, 담은 구를 생각했고 발걸음을 멈춰 서면 서로의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중학생이 된 두 사람은 우연히 다시 재회한다. 고등학생이 된 구는 공장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한다. 구와 담은 구가 일하는 공장 동료의 아들인 어린 '노마'와 친해지면서 귀갓길에는 붕어빵을 사 먹으며 소소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노마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두 사람은 충격에 휩싸인다. 서로의 얼굴을 보면 노마의 얼굴이 떠올라 괴로웠다. 두 사람에게는 그날의 사고가 흐릿해질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두 사람은 다시 떨어져 지낸다. 그 시기에 구는 같은 공장에 다니던 진주 누나를 만나 사랑 없는 연애를 시작한다. 그러다 이별을 통보받고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군입대를 한다. 그리고 담의 이모는 세상을 떠난다. '괜찮다, 아가야, 다 지나간다. 다 지나갈 거야.' 힘든 일은 다 지나가게 되어 있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아낌없이 해주던 이모의 장례를 혼자서 치른다. 담의 곁에는 할아버지도, 이모도, 구도 없었다.

 

구와 담, 헤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은 구가 전역한 이후에 다시 만난다. 구의 부모님 가게는 진작 망해 방치된 상태였고, 부모님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는 행방불명 상태였다. 그리고 부모님의 빚은 모두 구에게 넘어왔다. 둘은 빚쟁이를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서울을 떠나 작은 마을로 도망쳐도 빚쟁이는 계속 둘을 찾아냈다. 결국 구는 그들에게 붙잡혀 한동안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 빚쟁이에게 구타당하던 구는 어렵게 담과 다시 만나 길바닥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 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죽게 만들 거야.

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
살아남을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 pg 20 -

 

구를 사람 취급 하지 않던 빚쟁이들이 찾지 못하도록, 구의 죽음을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담은 구의 시체를 먹는다. 없는 사람 취급받던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만들 수 없기에. 

 

2. 해석 및 리뷰

 

책을 읽고 난 이후에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빚쟁이에 쫓기는 건 본인의 노력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내가 얼마나 짧은 생각을 한 건가 싶어 부끄러웠다. 가난과 빚은 대물림된다. 돈이 없으면 죄지은 사람처럼 살아야 하고, 돈이 있으면 죄 지은 사람도 잘만 산다. 구는 울트라 캡숑 아빠가 되는 어찌 보면 평범한 행복을 꿈꿨다. 하지만 부모의 빚을 떠넘겨 받으면서 평생을 가난 속에서 몸부림쳐야만 했다. 

 

희망을 가지면 욕심이 생기니까 해롭다고 말하던 구. 그렇게 말했던 구는 담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희망을 품었다. 이 둘에게 왜 이리 세상은 차갑기만 했을까 싶어 안타깝고, 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니 암담하고 혹독했다. 가진 것 없는 둘에게는 숭고한 사랑만이 남아있었다. 그런 면에서 담이 구의 시체를 먹는 행위보다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죽은 구를 애도하기 위해, 구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 안에서 살아있게 하기 위해 선택한 행동이었다. 

 

반응형